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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이

朴淑伊

1872. 6. 12 ~ 1955.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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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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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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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2년 6월 12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장구동(場邱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숙의(朴淑義)를 사용하였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면서 창수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영덕군 지역에서는 영해면(寧海面)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이를 시작한 인물은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교회 조사(助事)인 김세영(金世榮)이다. 김세영은 1919년 3월 초순 평양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는데, 도중에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영덕으로 돌아왔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권태원(權泰源)·정규하(丁奎河) 등 기독교인들과 협의하여, 영해면 성내동(城內洞)시장 장날인 3월 18일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거사일인 3월 18일 영해면 성내동시장에서는 2,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대규모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병곡면(柄谷面)에서도 만세시위가 활발하게 펼쳐졌다. 영해면의 만세운동 준비 소식을 들은 창수면 주민들은 시위대를 조직하고 영해면으로 이동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영해면에서 시위가 일어난지 하루가 지났기에, 창수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협의하였다. 3월 19일 창수면 읍내에 모인 약 2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여 창수주재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오후 4시경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이에 참여하여 준비해둔 목봉으로 주재소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는데 앞장섰다. 결국 시위 군중의 격렬한 공격에 주재소와 부속 건물, 물품과 공문서 등이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시위대가 해산하자 집으로 돌아갔지만, 결국 경찰에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공문서 훼기, 기물 손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기는 하였으나, 다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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