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방
朴命方1896. 7. 16 ~ 1962. 1.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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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6년 7월 16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남정면(南亭面) 장사리(長沙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일영(朴一英)을 사용하였다. 1919년 남정면 부흥동(富興洞)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4월 영덕군 남정면에서 거행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영덕군 만세운동은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교회 조사(助事)인 김세영(金世榮)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김세영은 1919년 평양신학교로 유학을 가던 도중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하였다. 이후 영덕 각지의 기독교인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3월 중순부터 이들 기독교인들의 주도로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4월까지 이어졌다. 적극 참여한 4월 4일 남정면 만세운동은 이와 같은 영덕군 만세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남정면 만세운동은 4월 3일 김도석(金道石) 집에 모인 마을 주민들의 결의로 시작되었다. 이 모임에 참석하여 주민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원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독립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거사를 독려하였다. 결의 이후에는 만세시위에 사용하기 위해 작은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될 것을 염려한 김도석의 아버지에 의해 불태워졌다. 거사일인 4월 4일은 장사동 장날로, 아침에 정상용(鄭尙鎔) 등과 만나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기로 하고, 다시 ‘대한독립만세’·’신대한독립만세’라는 구호를 적은 깃발 11개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정오 무렵 시장에서 박춘길(朴春吉) 등에게 이것을 나누어 주고, 직접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100여 명의 군중이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에 동참하였으나, 출동한 일제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에 의해 해산되었다. 경찰은 주도자와 적극 가담자를 체포하였는데 이때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모진 조사를 거친 후 결국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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