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내원
朴乃元1876 ~ 1908. 6.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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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봉래면(蓬萊面) 출신으로 추정된다. 『폭도에 관한 편책』에 1908년 당시 33세로 기재된 것으로 미루어 187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송화군에서 의병에 참여하였다. 송화군은 지리적으로 500~600m에 이르는 멸악산맥이 위치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달마산과 구왕산 등 의병들이 은신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또한 서해안과 인접해 있어 연안에는 초도(椒島)·석도(席島)·접도(蝶島) 등의 섬이 있어 일본군의 추격을 따돌리기에도 적합하였고 주민들의 협조도 적지 않아 의병 활동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1908년 3월부터 일본군은 송화군 일대에서 의병들과 자주 맞닥뜨리곤 하였다. 출신지인 봉래면에 위치한 수교(水橋) 일대에서도 의병들이 잦은 활동을 벌였고, 1908년 3월 말에는 신교칠(申敎七) 등이 이끄는 의병 부대원 45명이 일본 군경과 교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1908년 4월 말, 봉래면과 그 일대에는 일본군에 첩보가 접수될 정도로 의병 활동이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점차 이 지역에는 일제 군경과 의병의 소규모 교전이 자주 일어났고, 일제는 주민을 수색하고 의심이 생길 경우, 체포하거나 사살하는 일까지 벌어져 주민들 사이에서도 반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의병에 합류했는지, 참여한 계기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5월 31일부터 일제 경찰이 황해 송화군·장연군(長淵郡) 일대에서 의병을 상대로 탄압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해 6월 6일 일제 군경에 맞서 교전을 벌였으나, 이화섭(李花燮)·선용문(仙龍文)·정소회(鄭所回)·전화풍(田和豊)·정원영(鄭元永) 등과 함께 붙잡혔다. 호송 과정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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