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基淳
基淳1892. 9. 10 ~ 1975. 3.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대한독립의용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평안남도청 투탄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9월 10일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자산면(玆山面) 제일리(第一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1919년 5월 만주 콴뎬현(寬甸縣)으로 망명하였다가, 같은 해 9월에 군자금 모집 지령을 받고 국내로 들어왔다. 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조직한 대한독립의용단의 순천군 지부장 겸 경리를 맡았다. 의용단은 임시정부 직할 조직으로 상하이 본부와 국내 지부·분단을 두었고, 임시의정원 황해도 의원 김석황(金石璜)이 총무로 국내조직 책임을 맡았다. 1920년 4월 평양 기홀병원(記笏病院)에 위장 입원하여 의용단 동지를 규합하였고, 김동선金(東宣)·김송혁(金松赫)·여행렬(呂行烈)·주석환(朱錫煥)·홍석운(洪錫雲) 등과 독립군을 양성·모집하고 일제 기관을 습격·파괴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평양 지역에서 모집한 군자금을 콴뎬현독판부(寬甸縣督辦府)에 헌납하여 임시정부로 전달되었다. 1920년 8월 의용단 평양지단은 서간도 독립운동단체 연합기관인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과 연합하여 평양 시내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던지는 거사를 계획하였다. 이때 단총 10자루와 폭탄을 가지고 평양에 잠입해 기림리(箕林里)에서 일본 형사 요코야마(橫山駒次)와 순사부장 아오키(靑木)를 처단하였다. 이 일로 순천경찰서에 붙잡혀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23년 1월, 평남 성천군(成川郡) 영천면(靈川面)에 사는 이준용(李濬鏞) 등과 차명호(車明鎬)에게 독립운동 자금 1,000원을 요구한 혐의로 1924년 2월 18일 평양경찰서에 다시 붙잡혀 같은 해 2월 27일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으로 넘겨졌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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