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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충기

閔忠基

1888. 8. 10 ~ 1932.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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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민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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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대전(大田)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대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창명학교
  • · 회덕공립보통학교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8년 8월 10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 탄동면(炭洞面) 송정리(松亭里)에서 회덕군수(懷德郡守) 민병성(閔丙星)과 보성 오씨(寶城 吳氏)의 장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효서(孝恕), 호는 금포(錦圃)이다. 이명은 임무조(林茂助)이다. . 1907년 목릉참봉(穆陵參奉)을 지냈다. 1910년 창명학교(昌明學校)를 설립하였고, 1912년 회덕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을 지냈으며, 1913년에는 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910년대 광산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군자금으로 1만 원을 가지고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갔다. 1921년 8월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에게 독립자금 500원을 제공하고 임시정부에서 발행되는 『독립신문』 경영 관리에 참여하였다. 1921년 11월에 열릴 예정인 워싱턴회의의 한국 대표위원 파견 경비 모집을 목적으로 1921년 9월 국내에 파견되었다. 독립공채 모집원 신분으로 김연식(金連植)·남두원(南斗元)·김위석(金韋錫) 등과 독립공채 모집활동을 하였다. 충북 청주(淸州), 경기 안성(安城), 경북 경주(慶州) 등 전국 유지에게 「독립공채모집 통지서」, “국내 동포는 열과 성을 다하여 독립공채 모집에 응모하여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내용의 「재무 훈령 제13호」, ‘자금 모집을 위탁한다’는 재무총장 명의의 문서 등을 보냈다. 1921년 10월 15일 충북 청주군을 비롯한 각지에서 독립공채를 모집한 후, 대구에 머무르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2년 6월 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문서 위조죄, 사기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922년 10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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