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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운

朴基運

185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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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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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흥해(興海)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흥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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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산남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8) 경상북도 흥해군(興海郡) 기계면(杞溪面, 현재의 포항시 북구 기계면) 출신이다. 1907년 당시 50세였던 것으로 보아 185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산남(山南)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산남 의병부대는 1906년 3월 시종관(侍從官) 정환직(鄭煥直)이 아들 정용기(鄭鏞基)를 경북 영천(永川)으로 내려보내 일으킨 의병부대이다. 산남 의병부대는 1906년 (음)4월 28일 영해(寧海)에서 일본군에게 패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를 돕기 위해 진군하다가 영일군(迎日郡) 신광면(神光面) 우각(牛角)에서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의 간계에 속아 정용기가 대구감영으로 잡혀 갔다. 이에 의병부대는 중군장(中軍將) 이한구(李韓久)가 이끌었으나 그 해 7월 하순 해산되고 말았다. 아버지 정환직의 주선으로 풀려난 정용기는 1907년 4월 다시 의병부대를 일으켜 영해·청하(淸河)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7년 4월 산남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정용기 휘하 의병 80여 명과 함께 경주 서면(西面) 고천동(古川洞)의 권씨(權氏) 집에 가서 군수금 명목으로 100냥을 징수하였다. 그 해 5월 10일 청송군 허부자(許富者) 집에서 군수금 100냥을 징수하였고, 같은 달 20일 영덕군(盈德郡) 강구포(江口浦)에 사는 강씨(姜氏) 집에 가서 군수금 1,000냥을 징수하였다. 그 뒤 집으로 돌아와 머물던 중 1907년 (음)5월 26일 흥해군 순검에게 잡혀 이른바 ‘정사(政事)를 변경하기 위하여 난(亂)을 일으킨 죄’로 1907년 9월 4일 경북재판소에서 유형(流刑)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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