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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미상 ~ 190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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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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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永川)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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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산남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고촌면(古村面) 답곡동(沓谷洞, 현 영천시 고경면 논슬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이명으로 박주광(朴柱匡)을 사용하였다. 고려(高麗) 태종(太宗) 때 중서령(中書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 박언부(朴彦孚)의 31세손이다.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영천지역에서도 1906년 초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산남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정순기(鄭純基) 등과 동참하여 본부에서 모든 계획과 지도를 맡았다. 이때 각 지역별로 책임자를 배치하여 의병을 모집하도록 하자, 조경옥(趙景玉)과 함께 군위(軍威)·의흥(義興) 지역을 맡아 모병 활동을 하였다. 1906년 3월 영천·청송(靑松)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7년 10월 영일군(迎日郡) 죽장면(竹長面) 입암전투立(巖戰鬪)에 참전하였으나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려 정용기 대장을 비롯한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등 여러 장령(將領)들이 전사하는 희생을 치르고 물러났다. 그 뒤 정용기 대장을 대신하여 아버지 정환직이 대장으로 추대되어 의병부대를 재편성할 때 후봉장(後鋒將)에 선임되어 30여 명으로 구성된 장영(將營)을 이끌고 영천의 보현산(普賢山)과 영일(迎日)의 북동대산(北東大山)을 중심으로 항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1907년 12월 정환직 대장마저 사망하자 부대는 지대별로 흩어져 활동하였다. 1908년 (음)1월 3일 죽장면 광천(光川)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더 이상 활동이 어려워지자 다른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동지 이세기(李世紀)에게 무기 등 모든 것을 넘겨주고 뒷일을 부탁한 뒤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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