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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朴景錫

1888 ~ 1910.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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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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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扶安)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부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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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유장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소산면(所山面) 신율포리(新栗浦里)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8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9년 (음)윤 2월, 유장렬(柳漳烈)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의병장 유장렬은 전북 고창군(高敞郡) 사람으로, 1천여 명의 제자를 거느린 명유(名儒)였다. 전북 지역의 의병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09년에 의병을 일으켜 자신의 근거지인 고창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유장렬 의병부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1909년 (음)윤 2월 20일 밤에 동료 의병 5인과 함께 전북 부안군 하동면(下東面) 석동리(石洞里)에 사는 김일삼(金日三)에게 엽전 300냥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하지만 김일삼이 군자금 모집에 순순히 응하지 않아 강압적인 행위를 하였다. 김일삼은 이후 이 일을 고소하였다. 이후에도 의병활동을 계속하여 같은 해 4월 12일 오후 8시 부안군 남하면(南下面) 내호리(內狐里) 이장 민오겸(閔五兼) 등의 두 집을 방화, 고부군 덕림면(德林面) 율포리(栗浦里) 김길서(金吉西) 등을 응징하는 등의로 의병활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당시 의병활동을 위해서는 물자 조달과 같은 측면에서 인근 마을과의 연계가 중요했고 일본 측에서도 이를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일본은 의병과 마을 간의 연계를 끊기 위해 자위단을 설치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마을과 의병을 분리시키고자 하였다. 한편 1909년 전반부터 타 지역 병력이 전라도 지역으로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의병의 군수 물자 조달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의병의 물자 조달은 다소 무리한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동료 의병 3명과 함께 1909년 8월 고부경찰서 수색대에 붙잡혀 1909년 9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후 옥고를 치르던 중인 1910년 4월 16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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