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시식
閔時植1878. 4. 28 ~ 1947. 5.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산남의병부대(山南義陣)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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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8년 4월 28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죽장면(竹長面) 가사리(佳士里, 현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가사리)에서 아버지 민영화(閔泳和)와 어머니 의령남씨(宜寧南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화언(和彦), 이명으로 민대평(閔大平)을 사용하였다. 총 쏘기를 잘하여 주변에 명사수(名射手)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1906년 정용기(鄭鏞基)가 산남의병부대를 조직하기 위해 각지의 포수들을 모집하자, 영일의 북동대산(北東大山)과 영천(永川)의 보현산(普賢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포수 100여 명과 함께 산남의병부대에 투신하였다. 이때 가장 먼저 의병부대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모집하여 지원하였다. 1907년 7월 이후 산남의병부대가 본격적으로 항쟁하기 시작하자, 일본군과의 전투에 출전할 때면 항상 선봉에 서서 싸웠다. 의병장 정용기에 이어 제2대 정환직 대장, 제3대 최세윤(崔世允) 대장 휘하에서 모두 4~5년 동안 영천·청송(靑松)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1910년 8월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산속으로 은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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