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순호
閔舜鎬1880. 10. 3 ~ 1966. 11.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문경의병부대(聞慶義陣)
- · 제천의병부대(堤川義陣)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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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80년 10월 3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신북면(身北面) 평천리(平川里) 홍덕산(紅德山) 아래에서 민치일(閔致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봉래(鳳來)이고, 호는 우초(愚樵)이다.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인 성암(惺庵) 박주순(朴冑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6년 2월 23일 창의한 이강년(李康秊)의 문경의병부대에 참여하여 모든 재산을 기울여 군자금을 마련하고 의병을 규합하였다. 이강년이 2월 27일 마고성전투(麻姑城戰鬪)에서 참패한 뒤, 3월 12일 제천의병부대에 합류하여 3월 14일 유격장(遊擊將)에 임명되자 그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동하였다. 3월 15일 이강년과 함께 수안보(水安堡)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병참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제천을 출발하여, 3월 19일 수안보의 일본군 병참을 공략하였다. 3월 28일 경북 북부지역의 7읍 의병진이 함창(咸昌) 태봉전투(胎峯戰鬪)에서 일본군 병참을 공격할 때, 이강년과 함께 조령(鳥嶺) 관문(關門)에 주둔하여 일본군의 연락망을 차단하였다. 4월 3일 이강년과 함께 조령 관문에 있는 일본군 무기고를 습격하였다. 4월 20일 제천으로 들어가 4월 25일 제천전투(堤川戰鬪)에 참여하는 등 각처를 전전하며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9월 5일 태백산에서 의병부대를 해산한 뒤, 이강년과 함께 문경으로 돌아와 후일을 기약하며 은거하였다. 1907년 5월 11일 이강년이 제천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키자 소모영(召募營)의 후군장(後軍將)을 맡아 활동하였다. 강원도와 충청도, 경북 북부지역의 문경·순흥(順興, 현 영주시)·봉화(奉化) 일원에서 이강년과 함께 치열한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1908년 7월 2일 청풍(淸風)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붙잡힌 이강년이 10월 13일 서대문감옥에서 사망한 뒤, 중군장 김상태(金尙台)와 함께 흩어진 의병을 모아 경북 북부지역의 태백산 일원에서 약 3년간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그 후 일제의 탄압으로 가옥과 가재를 소각 당하고 단양(丹陽)의 산중에 은거하였다. 문경군 가은면(加恩面) 완장리(琬章里)에 거주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8년 겨울 용궁(龍宮) 나암재(蘿菴齋)에서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의 간행 사업에 참여하였다. 한말 문경 가은지역 출신의 우은(愚隱) 김종율(金鐘律)·우석(愚石) 정세헌(鄭世憲)·우송(愚松) 김정익(金正翊)·우전(愚田) 김정진(金廷鎭)·우포(愚圃) 김양한(金亮漢)·우천(愚泉) 김종훈(金鍾勳) 등과 함께 세칭 가은칠우(加恩七愚)라 불린다. 문경 가은에 있는 칠우대(七愚臺)에는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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