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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호

朴承浩

1877. 5. 17 ~ 192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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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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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宣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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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광복군총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신부면(新府面) 원동(院洞)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54세로, 1866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박승세(朴承洗)를 사용하였다.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기독교 목사로 활동하며 1919년 3월 1일 선천군 선천면(宣川面)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3월 9일 붙잡혔다. 그 해 3월 24일 선천경찰서의 즉결 심판으로 15일간 구류되었다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4월 30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평양형무소 신의주분감에서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에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 파견한 결사대를 도와 선천경찰서 투탄의거에 참여하였다. 광복군총영에서는 1920년 8월 24일 미국의원단 일행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선천역과 선천경찰서를 폭파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독립의지를 알리기로 하였다. 9월 1일 결사대원 한 명이 선천군청 지적창고(地籍倉庫)에 투탄하였으나 불발되었고, 박치의(朴治毅)가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유리창과 담을 파괴하고 격문을 살포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 인해 9월 7일까지 20여 명이 체포되었고, 이때 함께 붙잡혔다. 1920년 12월 21일 제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을 받았고, 장남인 박세건(朴世健)도 15년을 받았다. 1921년 4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열린 제2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되었고, 박세건은 징역 10년을 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병으로 1922년 8월 4일 풀려나 선천의 미동병원(美東病院)에 입원하였으나, 결국 당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문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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