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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국

朴承國

1875 ~ 1920.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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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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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야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야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정확한 출생시기나 출신지는 자료의 한계로 확인할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187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지역에서도 항일운동 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하자, 1920년 8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을 통해 일본 내각은 1920년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일본 육군은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 및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의 북간도 지역 ‘토벌’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감행된 탄압 때, 일본군은 독립군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포함한 북간도 지역의 한국인들을 학살하였다.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고 한다.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전투가 일어나자, 이에 대한 일본군의 보복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 시기 만주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에서 야단(野團)에 가입하였다. 야단은 동학의 한 교파인 청림교(靑林敎)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1919년 북만주 중동선 일대에서 조직되었다. 이 단체를 통해 약 2만 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야단에서 활동하던 중 일제에 붙잡혔고, 이후 정식재판 없이 1920년 11월 8일 두도구(頭道溝) 십리평(十里坪)에서 일제에게 살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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