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魯順
朴順1896. 7. 14 ~ 1971. 6.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다반군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하바롭스크 전투
- · 자유시사변
- · 볼로차예프카 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96년 (음)7월 14일 함경남도 덕원군(德源郡)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살 때 고향을 떠나 원산(元山)으로 가서 노동을 하며 지냈다. 1916년경 청진(淸津)으로 가서 일본인 경영 채광장에서 노동을 하였다. 임금 문제로 동맹파업을 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7년 여름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로 망명하였고, 이후 부두와 어장 등에서 노동을 하였다. 1918년 일본군이 연해주에 출병하자 일본군이 지원하는 백군에 맞서기 위해 소비에트 적군에 가담하여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로 갔다. 하바롭스크가 칼미코프(Иван Калмыков) 백군에 점령되자 산속으로 피신하였다. 1919년 가을 하바롭스크 인근 한인마을인 다반의 물슬촌으로 가서 한인 빨치산부대인 다반군대에 가담하였다. 다반군대는 1918년 하바롭스크가 함락될 당시 해산되었던 한인사회당 적위군의 생존자들이 청년들을 규합하여 조직한 부대였다. 대장은 제1차 세계대전에 제정러시아군 기병 장교로 참전했던 최 니콜라이였다. 1920년 초 하바롭스크 해방 전투에 참가하였다. 당시 함께 참가한 한인 빨치산 대원은 부대장 최 니콜라이를 비롯하여 고덕순·이두일(李斗日)·김 안드레이·조영인·이금돌·백수동·이성천(李成天) 등이었다. 하바롭스크가 해방된 이후에는 시베리아철도 연선 청룡정거장의 수비를 맡았다. 연해주 ‘4월참변’이 일어나자 소비에트 적군과 서쪽으로 퇴각하여, 11월 블라고베센스크(Благовещенск)에서 원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제8연대 특별한인부대에 배속되었다. 1921년 아무르주 스보보드니(Свободный, 자유시)로 가서 대한의용군에 편입되었다. 자유시에서 입원하여 치료 중 자유시사변이 일어났고, 퇴원 후 하바롭스크로 가서 박영(朴英)이 지휘하는 한인공산당 세포기관에 참여하였다. 1921년 말 백군이 하바롭스크를 공격하자, 박영·박 모이세이·황삼봉 등과 김치준이 이끄는 한인부대 소속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다. 하바롭스크가 점령당한 후 볼로차예프카(Волочаевка) 원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제5연대로 편성되어, 1922년 2월 볼로차예프카 전투에 참가 하바롭스크를 재탈환하였다. 이후 한인부대에 소속되어 하바롭스크 수비임무를 맡았다. 1922년 10월 25일 일본군의 철병 선언으로 러시아내전이 끝난 후 유대인자치주 비로비잔(Биробиджан)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후 키르기스공화국 프룬제(Фрунзе, 현 비슈케크(Бишкек))에서 살았다. 1960년대 중반, 러시아내전 당시 한인 빨치산들의 회고를 모으던 이인섭의 노력에 호응하여, 「소련 원동에서 1918년부터 1921년까지 국민전쟁에 참가한 박노순의 회상기」를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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