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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식

南昌植

187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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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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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노령방면

관련 단체

  • · 이르쿠츠크 조선인민회
  • · 치타 고려공산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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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1) 출신지, 유년시절, 러시아로 이주하게 된 경위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일제 정보문서에 1922년 당시 51세로 되어 있어, 1871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들이 1871년 개척해 사만리(四萬里)라고 불렸던 러시아 원동지역 아무르주 블라고슬로벤노예(Благословенное)에 거주하였다. 슬하에 아들 남만춘(南萬春)과 표도르(Фёдор), 딸 알렉산드라(Александра, 남슈라)와 마리야(Мария)를 두었다. 1908년 3월 미국에서 장인환(張仁煥)과 전명운(田明雲) 의거가 알려지자,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의 한인 신문인 『해조신문(海朝新聞)』에 1원을 의연하였다. 1908년 장남 남만춘의 학업을 위해 치타(Чита)로 가서 군대에 채소를 납품하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1918년 남만춘에게 러시아 백군 콜차크(А.В. Колчак) 군의 동원령이 내려지자 가족과 함께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로 피신하여 잡화상으로 일하였다. 이르쿠츠크에서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에 가담하여 러시아어 서기로 활동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4월 7일 김남묵(金南黙)·조도선(趙道善) 등과 조선인민회 총회를 개최하였다. 현지 한인 700여 명이 모인 총회에서 각 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하였으며,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였다. 이 일로 러시아 관헌에 붙잡혀 1개월의 금고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2월 1일 이르쿠츠크 조선인민회 찬성원으로 회장 김자유(金子有), 부회장 조도선 등과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확인하고, 원조금을 지원하기 위하여 정기걸(鄭基傑)을 파견하였다. 당시 모금된 원조금은 30만 루블이었는데, 이 중 2,000루블을 의연하였다. 정기걸의 활동으로 같은 해 12월 15일 임시정부 내무부로부터 최영기(崔永基)와 함께 ‘러시아 시베리아 특파원’에 임명되었다. 1921년 가을 코민테른의 지시로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활동하던 장남 남만춘이 일본영사관 경찰의 추적을 받자 만주를 거쳐 치타로 귀환할 때 치타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치타에서는 고려공산당 선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10월 베르흐네우딘스크(Верхнеудинск, 현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의 통합을 위한 고려공산당 연합대회가 개최되었으나 이르쿠츠크파가 퇴장하고 치타에서 별도의 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치타의 당대회에 참여하였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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