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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호

朴濟鎬

1899. 10. 26 ~ 192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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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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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관련 사건

  • · 『신천지』 필화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3) 1899년 10월 26일 서울 중구 입정동(笠井洞)에서 태어났다. 1923년 잡지 『신천지(新天地)』에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글을 게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신천지』의 편집장으로 근무하던 중 1923년 9월 1일 유병기(兪炳璣)가 쓴 「약소민족에게 호소하여 단결을 제출함」이라는 글에 공감하여 『신천지』 9월호에 게재하였다. 이 글의 취지는 ‘정복당한 식민지를 해방시키고 같은 경우의 약자와 함께 정복자 또는 착취자 계급을 타도하여 이상사회의 건설에 노력할 것’, ‘모든 약자는 국가적 관념을 초월하여 반항하는 사람들을 보조할 것’, ‘육해군의 건설을 방해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약소 민족들과 함께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식민지 해방을 달성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글이 실린 『신천지』 9월호를 약 2,000여 부 발행하여 서울 관철동(貫鐵洞) 김희남(金喜南)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 다수의 장소에 배부하여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이 일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세상 사람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유병기와 함께 종로경찰서에서 파견된 3명의 형사에게 붙잡혔다. 1923년 11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에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취하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수감 중 큰 병을 얻어 1924년 6월 23일 형집행정지로 가출옥하여 안상호(安商浩)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병세가 더욱 심해져 결국 1924년 7월 8일 사망하였다. 사후 서울 동대문 밖 영도사(永導)寺에서 7월 20일 ‘고 박제호 씨의 추도회(追悼會)’가 거행되었고, 이 자리에서 130원의 성금이 모아져 고인의 유가족에게 전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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