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관
朴永寬1899. 7. 7 ~ 1975. 10.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한통의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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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9년 7월 7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무장면(茂長面) 도곡리(道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호는 송와(松窩)이다. 대한통의부 부원으로 군자금 모금과 전북 일대 관공서 폭파 계획에 참여하였다.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부원으로 1925년 조인현(趙仁賢)·이중산(李中山)과 함께 전북 군산에 밀파된 오석완(吳碩完)과 접촉하였다. 이들은 전라도 일대에서 일제의 관공서, 은행 등에 대한 폭파와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부원을 규합 중에 있었다. 이때 이들의 거사 계획에 적극 찬성하여 통의부에 가입하는 한편 이들과 함께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1926년 7월 7일 오석완으로부터 권총 1정과 탄환 28발을 건네받고 이를 석유관 속에 넣은 뒤 집 뒤 산속에 숨겨두는 등 거사를 위해 활동하였다. 그리고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 이리(裡里)지점 습격 계획에도 참여하였다. 1927년 오석완이 전남의 부호 강(姜)모에게 지폐 위조를 위한 비용을 징수하려다가 붙잡혀 조직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조인현 등은 모든 계획을 중지하고 1928년 5월 말 오석완 출옥 이후 다시 거사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조인현이 끝내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체포되면서, 1928년 6월 초 다른 13명의 동지들과 함께 이리경찰서에 붙잡혔다. 당시 신문에서는 이 사건을 이른바 ‘전북통의부사건’ 또는 ‘전북폭탄사건’이라고 보도하였다. 19개월 만에 예심이 종결되어 전주지방법원에 넘겨졌다. 1930년 3월 12일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총포화약류 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같은해 10월 풀려났다. 이후 옥고의 여독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삼서면(森西面) 두월리(斗月里)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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