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각
朴勝珏1897. 4. 12 ~ 1971. 2.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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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4월 12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양촌면(陽村面) 누산리(樓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3월 23일 양촌면 양곡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포군 양촌면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박충서(朴忠緖)가 귀향하면서 시작되었다. 박충서는 양촌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심하고, 3월 19일 안성환(安聖煥)의 집에서 박승만(朴勝萬)·전태순(全泰順)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 계획에 적극 찬동하고 참여하였다. 이들은 우선 ‘비분강개(悲憤慷慨)’한 격문과 독립만세를 위해 모여야 한다는 경고문 10여 통을 만든 후 양촌면 각지에 배포하여 지역민의 시위 참여를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여기에 오인환(吳仁煥)·정억만(鄭億萬)도 뜻을 같이하여 총 7인이 역할을 분담한 후 3월 23일 양곡리 장날을 이용하여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경, 양촌면 양곡리 시장에서 박충서 등과 함께 당시 시장 장터에 모인 수백 명에 달하는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본 경찰이 폭력적 진압에 나섰고, 결국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징역 1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감형되어 1920년 4월 2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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