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풍
朴順風186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평안남도 양덕군(陽德郡) 구룡면(九龍面) 봉계리(鳳溪里) 출신으로, 판결문에 따르면 186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하는 박순풍(朴淳風)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면서 양덕군 양덕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양덕군은 천도교(天道敎) 교세가 강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 준비는 양덕군 천도교 교구장(敎區長)인 이영화(李永華)로부터 시작되었다. 천도교 대교구장회의(大敎區長會議) 참석차 평양을 방문했다가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이영화는 독립선언서 100부 정도를 얻어 3월 1일 양덕군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대구면(大救面)·상룡면(上龍面)·하룡면(下龍面)을 방문하여 천도교 지도자들과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 거사 일을 양덕군 양덕면 읍내에서 장터가 열리는 3월 4일로 확정하였다. 아울러 읍내 기독교 측에도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다. 3월 1일 평양에서 시작된 시위가 인접 지역으로 퍼져나가자, 지역의 일본군 헌병대 측에서도 대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양덕군에서 일부 주도자들이 예비 검속을 당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3월 5일 새벽 5시 이학근(李學根)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독립선포식이 시작되었다. 만세운동 시작 장소인 양덕면(陽德面) 상석리(上石里) 천도교당 앞에 수많은 군중이 집결하였다. 이때 이 자리에 참석하여 만세시위 행진이 시작되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날의 시위에서는 일본군 헌병대의 야만적인 발포로 70명 이상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아울러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70여 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