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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익

朴順益

1881. 7. 23 ~ 193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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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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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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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1년 7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칠원면(漆原面) 구성리(龜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경흡(朴景洽)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24일과 4월 3일 칠원면 만세운동을 주도였다. 1919년 고종 장례에 참가한 지역 인사들이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함안 지역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칠원면에서도 기독교계와 유림세력이 결합하여 만세시위가 논의되었다. 이때 구성리(龜城里) 교회 손종일(孫鐘一)과 함께 기독교계를 대표하여, 칠원면 유림 원로인 박경천(朴敬天) 등과 상의하였다. 거사 논의는 용산리(龍山里) 산중에 위치한 가장정(佳藏亭)에서 이루어졌다. 3월 24일 칠원시장 장날을 거사일로 잡았다.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제작, 군중 동원을 위한 연락 등의 역할이 분담되어 비밀리에 준비를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24일 오후 4시경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가 칠원경찰관주재소로 나아가자 일본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었고, 신영경(辛泳慶)·황영환(黃英煥) 등이 체포되었다. 이때 몸을 피했다가 밤 9시경 300명의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산당하였다. 함께 시위를 주도한 윤사문(尹士文)이 체포되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4월 3일 2차 만세시위를 손중일·황대수(黃大秀)·이원식(李元植) 등과 함께 이끌었다. 오후 3시경 1차 시위 때보다 많은 1,300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이고,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선두에 서서 군중과 함께 투석전을 전개하고 몽둥이를 들고 주재소로 향하였다. 그러나 당시 함안에 들어와 있던 일본군 수비대가 출동하여 일본 경찰과 함께 폭력적인 진압을 전개하면서 시위 주도자 대부분이 체포될 때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징역 8월을 받고,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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