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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동

朴基東

1873. 10. 28 ~ 1947.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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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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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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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관련 사건

  • · 영덕군 지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1873년 10월 2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오보면(烏保面) 매정동(梅亭洞)에서 태어났다. 34세였던 1919년 당시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황장동(黃腸洞)에서 살았으며, 북장로교 신도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9일 영덕군 지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영덕 지역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중순경에 시작되었다. 북장로교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은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가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접하고, 중도에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김세영은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 병곡면(柄谷面) 북장로교 송천동(松川洞) 교회의 조사(助事) 정규하(丁奎河) 등과 연락을 취하였고, 김혁동(金赫東)에게 영덕의 강우근(姜佑根)과 김우일(金愚一) 등을 만나도록 하고, 지품면(知品面)의 김태을(金太乙), 황장동의 주명우(朱明宇)·김중명(金重命) 등과 접촉하도록 하였다. 주명우는 북장로교 원전동교회 집사였고, 김중명은 북장로교파의 영수(領袖)였다. 지품면 원전동시장(院前洞市場) 장날 만세시위는 이들 기독교인들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주명우는 전날 만들어 두었던 ‘대한독립만만세’라고 쓴 깃발을 들고 원전동시장으로 갔다. 다른 지역에서 이미 만세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김중명이 주명우와 논의하여 바로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하였다. 주명우는 수십 명이 모였을 때 ‘대한 독립 만만세’라고 직접 쓴 깃발을 들고, “한국독립 달성을 위해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자”, “죽기를 결심하고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라는 연설을 하였다. 정순용(鄭順用)·김주일(金周日) 등과 함께 독립을 희망하여 현장에서 참여하였다. 같은 날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 장날에 일어난 시위가 2,000여 명의 대규모 집회였고, 경찰관주재소, 우편소, 보통학교, 심상소학교 등 일제 관공서와 학교 등의 건물에 대한 성난 군중의 파괴가 이루어졌음에 비하여 원전동시장의 만세운동은 소규모에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주도자를 검거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기에 검거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붙잡혔다. 부인 윤악이(尹岳伊)는 3월 18일 영덕면(盈德面) 남석동시장(南石洞市場)의 만세시위에서 붙잡힌 김태을(金太乙)의 아내 신분금(申分今)과 함께 3월 24일 원전동시장 장날 다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같은 해 12월 26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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