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익
朴勝益1878. 10. 28 ~ 1941. 4.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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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78년 10월 28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신풍리(新豊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향리에 거주하며, 4월 7일과 8일에 걸쳐 전개된 장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장곡면의 만세운동은 서울 경신학교(儆新學校)에 재학 중이던 윤익중(尹益重)·윤낙중(尹樂重)·윤형중(尹衡重) 3형제의 주도로 1919년 4월 4일부터 시작되었다. 윤익중과 윤낙중은 3월 20일 독립선언서 100매를 가지고 귀향한 후 가족과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여, 4월 4일 화계리(花溪里)·광성리(廣城里)·신풍리의 주민들과 함께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만세시위를 하였다. 이후 가송리(佳松里)의 김동하金(東河)를 중심으로 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이화춘(李化春)·김차제(金次濟) 등이 새로운 만세운동을 계획하여 4월 7일부터 2일간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7일 화계리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고, 이렇게 모인 주민들을 지휘하여 마을 앞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였다.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로 행진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목격하고, 이에 공감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곧장 만세시위 대열에 동참하였다. 이후에도 지나는 길목마다 인근의 주민들이 호응하여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김동하 등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 뒷산인 응봉산(鷹峰山)에 올라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한상철(韓相喆)의 연설과 독립선언문의 취지를 듣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규탄 집회를 마친 뒤 김동하·한상철 등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로 갔다. 당시 면사무소에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이에 분노하여 김동하를 시작으로 김동완·김용숙·이화춘·김차제 등은 시위대의 선두에서 면사무소를 향해 돌을 던지며 부수라고 외쳤다. 다른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 공격에 참여하여 돌과 몽둥이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뜨렸으며 각종 시설과 기물·문서 등을 파괴하였다. 다음 날인 8일에도 밤 11시경부터 전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학생 등 60여 명과 함께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출동한 일본 경찰의 발포로 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이 과정에서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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