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엽
朴承燁1862. 11. 2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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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2) 1862년 11월 27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용포면(龍浦面) 창전리(倉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58세로, 4월 6일 이천군 용포면 창전리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강원도 이천군에는 3월 2일부터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면서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4월 4일과 5일 낙양면樂(壤面) 지석리(支石里)에서 첫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지석리 만세운동은 천도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 주민을 규합하여 이틀 동안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지석리 만세운동에 이어 6일 일어난 창전리 만세운동은 이천군 내 만세운동의 열기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창전리 만세운동은 정용규(鄭龍奎)·김연옥(金淵玉)·손은국(孫銀國) 등이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모두 천도교인으로, 4월 6일 읍내면(邑內面) 탑리(塔里)에서 장이 서는 것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천면 남좌리(南佐里)의 천도교인 박재곤(朴在坤)·이원모(李元模)와도 연락하여 연합하기로 하였다. 거사일인 4월 6일, 정용규·김연옥 등 주도자들이 선두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읍내로 향하였다. 이날 해마다 마을에서 열리는 봄 고사춘계기제[(春季祈祭)]에 참석하였는데,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여 시위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1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뒤를 따랐다. 시위대와 함께 만세를 부르며 비석리(碑石里)를 거쳐 탑리시장에 도착한 이후 장터를 돌며 행진하였다. 남좌리 주민과 장꾼들도 만세시위에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대규모 만세시위 소식을 듣게 된 일본 경찰은 만세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모진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2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만기 출옥을 한 달여 앞둔 1920년 4월 28일 영친왕(英親王)의 결혼을 기념한 ‘은면(恩免)’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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