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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린

朴承獜

1885. 1.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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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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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이원(利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이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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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85년 1월 15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신풍리(新豐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승린(朴承獜)을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의생(醫生)으로 이원군 동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원군에서는 3월 5일 무렵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개신교 인사들과 천도교 인사들이 함경남도 이원군으로 만세시위 소식과 더불어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곡구(谷口)헌병주재소의 일본 헌병들은 이원군에 독립선언서가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압수하였다. 이후에도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계속 이원지역에 전달되었다. 개신교 신자 박용해(朴龍海)는 경성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져왔다. 3월 7일 독립선언서를 두고 이원군 동면에 위치한 이원군 천도교구실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들은 3월 10일 장날이 서는 이원군 서면(西面) 남문리(南門里)에 위치한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후로 동면과 서면에서는 만세시위가 잇달아 일어났다. 3월 11일에는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에 위치한 군선항(群仙港)에서 만세시위가 있었다. 3월 16일 동면 용암리(龍巖里) 용암시장에서 몇몇 인사들과 만나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7일 오후 2시 무렵 동면 면사무소에서 김병직(金丙直)·김희순(金希舜)·이경수(李敬洙)·조창서(趙昌瑞)를 비롯한 마을 주민 4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 일부는 면사무소를 향해서 지난번에 납부한 세금을 반환하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100여 명의 시위대는 곡구로 이동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면서기 이병성(李秉性)은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기도 하였다. 동면 일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제는 북청에서 군인 16명을 파견해서 단천군과 이원군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였다. 이후 이원군 동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미결 구류 일수 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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