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성
朴淳成1897. 1. 3 ~ 1950. 5.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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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7년 1월 3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중서면(中西面) 곡령리(鵠嶺里)에서 태어났다. 한자가 다른 박순성(朴順成)을 이명으로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개성군 송도면(松都面)의 만월대정(滿月臺町)과 북본정(北本町) 당교(堂橋) 등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개성군 중서면 주민인 허내삼(許迺三)은 자신의 마을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밤 8시경 주민 30명을 모은 후 만세시위 취지를 설명하고, “저지하는 자에게 저항하기 위해 각자 곤봉 또는 기와 조각을 휴대하라”고 하였다. 허내삼의 권유를 받고 이민식(李民植)·방성묵(方聖默)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허내삼이 지휘하는 시위 군중과 함께 횃불을 들고 곡령리를 출발하여 만월대 아래를 지나 북본정 당교 부근까지 시위행진을 하였다. 그날 밤 11시경 개성경찰서 부장순사가 순사 4명과 순사보 5명을 이끌고 와서 시위 군중을 진압하려고 하였다. 허내삼·김대성 등과 함께 미리 제작해두었던 곤봉으로 일본 경찰에 대항하여 격투를 벌였다.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의해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주도자와 적극 가담자에 대한 검거를 피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일본 경찰의 가혹한 심문을 거친 후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10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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