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석
朴順石1895. 6. 29 ~ 1958. 5.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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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5년 6월 29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진평동의 만세운동은 대구부(大邱府) 신정(新町)에 사는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등사판(謄寫版)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인동교회(仁同敎會) 목사 이상백(李相栢)을 찾아온 것이 시작이었다. 이영식은 독립선언서를 보여 주며, 인동면 진평동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하였다. 평소 독립을 희망하던 이영식은 이내성(李乃城)과 함께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심하고, 임용섭(林龍燮)·이영래(李榮來)·박명언(朴明彦)·권영해(權永海)·임점석(林占錫) 등과 회합해 3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3월 11일과 12일 오전에 걸쳐 이상백의 집에서 만세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마을에 붙일 「독립선언서」를 필사하였다. 또한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만나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만세운동 참여 권유를 받고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2일 밤 8시에 약속 장소인 인동면 진평동 뒷산 기슭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연락을 받고 온 약 2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있었다. 만세운동은 이상백과 이영식이 민족 자결의 취지를 설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에 호응하여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힘껏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폭력적인 진압을 통해 시위대를 해산하고 주도자와 참여자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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