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교
朴順交1869. 9. 1 ~ 1946. 7.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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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69년 9월 1일 강원도 춘천군(春川郡) 북산면(北山面) 조교리(照橋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1919년 3월 28일 춘천 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춘천의 만세운동은 3월 초에 계획되어 오랜 준비 기간 끝에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처음 만세운동을 계획한 것은 천도교 교구장(敎區長) 이준용(李俊容)과 봉훈(奉訓) 윤도순(尹道淳)이었다. 두 사람은 평강교구(平康敎區)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이를 군내에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배포가 계획대로 되지 않자, 두 사람은 「독립선언서」 없이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두 사람으로부터 가장 먼저 연락을 받아 시위 계획을 함께 의논하였다. 이준용·윤도순과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시위 군중을 규합하기로 하고, 교인들을 만나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설득하였다. 특히 윤도순은 허기손(許基損)·안동식(安東植)·차성강(車聖康) 등 교인들을 모으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준용과 같이 교인들을 만나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설득하였다. 그런데 윤도순의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면서 시위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이준용·허기준(許基俊) 등과 긴급히 만나 논의한 끝에, 3월 28일 춘천면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후 교인들에게 시위 계획을 알리는 한편,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3월 28일 태극기를 가슴에 숨기고 읍내 장터로 향하였다. 장터와 길목에는 일본군 헌병과 수비대가 장꾼들을 감시하며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었다. 이준용·허기준을 비롯해서 시위 동참을 약속한 천도교인들과 장터에 모여 기습적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세 사람의 선창에 장터에 있던 교인들도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며 호응하였다. 만세소리에 장터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헌병보조원 허현(許鉉)이 총을 버리고 시위 군중과 합류하였다. 만세소리가 장터에 울려 퍼질 즈음, 수비하던 일본 군경이 출동하였다.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이준용·허기준·허현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 해 6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한번 상고하였지만, 고등법원에서도 같은 해 7월 17일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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