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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환

朴洙煥

1896. 11. 22 ~ 194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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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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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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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6년 11월 22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약목면(若木面) 평복동(平福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9일 약목면 평복동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칠곡군에서는 1919년 3월 7일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 이후, 수차례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약목면에서도 1919년 3월 14일 안도수(安道秀)와 김익시(金益時)의 주도 하에 약목장터에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칠곡군의 만세시위는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4월 초에 주변 지역인 성주군(星州郡)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의 영향을 받아 재개되기 시작하였다. 약목면 평복동에 살던 지하수(池夏洙)는 만세운동을 실행하고자, 4월 9일 밤 마을 청년 12명을 평복동 권군필(權君弼)의 집으로 불러 모았다. 이 회합에 장상흠(張尙欽)·권성수(權星洙)·김봉근(金奉根)·김동술(金同述)·박수병(朴洙丙)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지하수는 이 자리에서 인근 지역에서 활발히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독립국이 되기 위해서는 독립만세를 외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권성수 또한 지하수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고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권유하였다.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찬성하고, 즉시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마을 동쪽에 위치한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수차례 외쳤다. 만세소리를 듣고 즉시 출동한 일본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을 당한 청년들은 해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즉시 항소하였고, 그 해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度)로 감형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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