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우
朴受祐1885. 3. 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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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885년 3월 3일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양변면兩(邊面) 금마리金(馬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수호(朴受祜)·박수조(朴受祚)를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강원도 영월군 양변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양변면 만세운동은 같은 마을에 사는 박광훈(朴光勳)·이용헌(李容獻)·이병익(李炳翼)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1919년 4월 20일 영월군수 석명선(石明瑄)이 마을에 강연을 오는 때에 맞춰서 시위를 펼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주도자들은 태극기를 만들고, 「만세연명부(萬歲連名簿)」를 만들어 만세운동에 함께 할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주저 없이 명부에 서명하며 동참을 약속하였다. 명부에는 박수경(朴受景)·박수항(朴受恒)·탁은상(卓殷相) 등 많은 주민이 서명하였다. 그러나 군수의 강연이 취소되면서 만세운동도 어쩔 수 없이 취소되었다. 다음 날인 4월 21일 아침, 군수가 강연을 위해 당일 다시 방문한다는 소식에 주민들과 같이 주도자들의 지휘에 따라 모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날은 주천장터에 장이 서는 날이기도 하여 주도자들은 장에 가는 사람들을 모았고, 이들과 함께 군수가 지나갈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11시경 군수 석명선이 금마리에 와서 농사에 대한 강연을 하였다. 강연을 마친 군수가 금마리에서 주천리로 갈 때, 군중과 함께 길목에서 군수 일행을 막아섰다. 선두에 있던 주도자들이 군수에게 태극기를 쥐여주며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였다. 군수는 군중의 기세에 마지못해 만세를 불렀다. 군수의 선창에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군수 일행을 선두에 세우고, 200여 명의 시위대가 그 뒤를 따라 주천장터와 마을을 돌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평화로운 시위를 펼친 후 모두 자진 해산해 귀가하였다. 군수가 돌아간 저녁 무렵,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친 주천헌병파견소(酒泉憲兵派遣所) 소속 일본 헌병에게 붙잡혔다. 일본 군경의 모진 심문을 거친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7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월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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