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석
朴秀碩1884. 6. 23 ~ 1944. 10.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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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4년 6월 23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춘산면(春山面) 금오동(金梧洞, 현 금오리(金梧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며, 금오동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의성군 춘산면 금오동은 의성에서도 외곽에 위치하여 만세운동에 대한 소식이 비교적 늦게 전달되었다. 같은 금오동에 거주하는 유림 신병섭(申炳燮)이 경북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화목시장(和睦市場)에서 3월 27일에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금오동에서의 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금오동 주민 방오발(方五發)의 집에서 동네 사안을 의논하기 위해 동회(洞會)가 개최되었는데, 이웃 신종환(申宗煥)과 함께 참석하였다. 신병섭은 동회야말로 독립운동을 독려할 기회라고 여겼다. 그는 “지금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 시위로 인해 독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웃한 청송군 화목시장에서도 3월 27일에 시위가 일어났는데, 우리 동네만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 의견에 적극 찬동하여 그 자리에서 만세시위 준비에 들어갔고, 거사일은 4월 3일로 결정되었다. 주도자인 신병섭과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격문을 작성하고, 대표자로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 내용은 “조선 각 지방에서 지금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들도 죽음으로써 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격문 작성 후 같은 마을 사람인 김태섭(金台燮)·이태성(李泰成)에게 보내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군경에게 시위 계획이 발각되었고, 결국 4월 3일에 계획된 시위는 무산되었다. 이후 신병섭·신종환과 함께 시위를 계획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모진 조사를 거친 후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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