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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

朴受景

1867. 10. 25 ~ 193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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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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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寧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영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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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67년 10월 25일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양변면兩(邊面) 금마리金(馬里, 현 주천면(酒泉面) 금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1일 영월군 주천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주천장터 만세운동은 같은 마을에 사는 박광훈(朴光勳)의 제의에 이병익(李炳翼)·박수영(朴受永)·이용헌(李容獻) 등이 뜻을 같이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1919년 4월 20일 영월군수 석명선(石明瑄)이 강연을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 참여를 약속받기 위하여 「만세연명부(萬歲連名簿)」를 만들어 서명하도록 하였다. 평소 만세운동이 독립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 없이 명부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만세운동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지만, 군수의 강연이 취소되면서 다음을 기약해야 하였다. 4월 21일 아침 취소되었던 군수의 강연이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 시위 소식에 2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였고, 군수가 강연을 마치고 떠나는 시간에 함께 길목에서 군수 일행을 기다렸다. 오후 무렵 강연을 끝낸 군수 일행이 금마리에서 주천리로 향할 때 다른 군중들과 같이 길목을 막았다. 박광훈·이병익 등이 군수에게 태극기를 쥐여 주며 만세 부를 것을 권유하자, 군수는 군중들을 힘에 눌려 만세를 불렀다. 이어서 다른 군중들과 함께 한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군수 일행은 「만세연명부」에도 서명하였으며, 시위대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군중들과 같이 마을과 주천장터를 돌며 평화로운 만세시위를 펼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일제 군경은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주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만세연명부」를 빼앗아 명부에 이름을 올린 주민들을 체포하였다. 그에 따라 군수 일행이 돌아간 저녁 무렵, 주천헌병파견소 헌병과 보조원 등에게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월을 받았다. 다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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