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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모

文亨模

1875. 7. 5 ~ 1952.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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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형모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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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최익현 의병부대
  • · 이규홍 의병부대
  • · 임병찬 의병부대
  • · 대한독립의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5년 7월 5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최익현(崔益鉉)이 임병찬(林炳贊)의 집에 머물면서 거의를 도모하자 이규홍(李圭弘)·박이환(朴駬桓)과 함께 임병찬을 찾아가 사제 관계를 맺고 최익현 의병부대에 합류할 의사를 전달하였다. 이규홍을 중심으로 의병부대를 세우기로 하고, 박이환과 함께 각 지방에서 산포수를 모집하는 한편 뜻을 같이 하는 지사들을 규합하여 1906년 11월 21일 출정하였다. 무성서원(武城書院)을 출발해 정읍(井邑)을 거쳐 순창(淳昌)에 주둔하던 최익현 의병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임실(任實)로 향하였다. 그러나 최익현 의병부대가 관군에 패주하고, 최익현과 임병찬 등 11명이 체포되자, 이규홍과 함께 다음 기회에 재기할 것을 약속하며 의병부대를 해산하고 흩어졌다. 1907년 대마도(對馬島)에 유배갔던 임병찬이 귀국하자, 이규홍·박이환과 함께 임병찬을 찾아가 최익현의 유지를 잇기 위해 다시 의병을 일으킬 것을 의논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제의 감시가 엄중하여 함부로 행동하기 어려웠다. 그 해 8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해산 이후 군인들이 전국에 흩어져 의병에 참여하기 시작하자, 이규홍·박이환과 함께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일제를 몰아내겠다는 계획을 임병찬에게 전달하였다. 임병찬이 “신중을 기하여 거의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이규홍·박이환과 함께 거의를 준비하여, 11월 초 이규홍을 의병장으로 하는 의진을 출범시켰다. 이때 박이환을 부장으로 하고, 참모장을 맡았다. 이규홍 의병부대의 일원으로서 11월 15일 고산(高山)에서 일본군과 조우해 여산(礪山)과 익산(益山)으로 옮겨가며 10여 일간 계속 싸우면서 일본군을 29명 사살하고 의병도 21명이 전사한 전투에 참여하였다. 12월 5일 이후로는 진안(鎭安)·장수(長水)·용담(龍潭) 등 산악 지방으로 부대를 옮기면서 일본군과 전투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1908년 이후로는 전투가 길어져서 의병들이 지치기 시작하였고, 일본군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결국 남은 의병의 수가 10여 명에 불과하자, 그 해 5월 20일 대전의 식방산에서 의병장 이규홍과 함께 의병을 해산하였다. 이후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1912년에 임병찬이 호남 각지에서 의병과 유생들을 규합하여 재기하려고 하자 이규홍·박이환과 함께 동참하였다. 그 결과 1912년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가 창립되어 본격적인 거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호남통신국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거사 계획이 일제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양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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