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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하

朴鳳夏

188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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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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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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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6)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산내면(山內面) 원서리(院西里) 출신이다. 1920년 당시 36세였던 것으로 보아 1884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밀양군 밀양면 밀양시장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밀양에서는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귀향한 윤세주(尹世胄)·윤치형(尹致衡) 등의 주도로 계획되었다. 이들은 귀향 후 밀양사립동화중학교(密陽私立同和中學校) 교장 전홍표(全鴻杓)의 지도 아래 김병환金(餠煥)·이장수李(章守)·윤보은(尹輔殷)·김소지金(小池) 등과 더불어 3월 13일 장날을 기하여 밀양(읍내)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밀양공립보통학교(密陽公立普通學校) 졸업생과 밀양교회(密陽敎會) 기독교인들 또한 여기에 합세하여 태극기와 선언서를 수백 매 등사해 두었다. 13일 거사 날이 되자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다가 일본 경찰과 헌병에 의해 해산되었다. 3월 14일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과 기독교인 등 150여 명이 밀양 읍내에 다시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하여 강제 해산되었다. 독립만세운동의 양상이 고조되는 것을 경계하던 일본군은 3월 18일에도 부산에서 10여 명의 헌병을 밀양에 파견하여 시위를 진압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지역 유생과 승려들도 만세시위에 참가하는 등 4월까지 만세운동이 계속되었다. 이때 밀양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소요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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