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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조

朴奉朝

1892. 10. 10 ~ 1946.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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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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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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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2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위라리(位羅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정일(朴貞一)을 사용하였다. 운곡면의 여러 산에서 전개된 횃불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운곡면에서는 1919년 4월 3일의 독립만세운동 시도가 일본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좌절된 후, 4월 6일과 8일 2회에 걸쳐 횃불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횃불만세운동은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출동하기까지 만세운동의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야간이기 때문에 참여자를 쉽게 식별할 수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횃불은 야간에 멀리서도 보이기 때문에 만세운동의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의 파급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운곡면소재지인 신대리(新垈里)를 중심으로 모곡리(茅谷里)·영양리(永陽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위라리 등 주민 600여 명은 4월 6일 밤 마을 주변의 산에 올라가 일제히 제1차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마을 주민 간 연락을 통해 박봉운(朴奉云)·박삼룡(朴參容) 등 위라리 마을 주민과 함께 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횃불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본 헌병이 시위 진압을 위해 곧바로 출동하였다. 그러나 야간에 산 위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시위 현장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며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4월 8일 제2차 횃불만세시위가 조직되었다. 이날의 시위는 인근의 비봉면(飛鳳面) 주민과 연합하여 전개되었다. 오후 10시부터 마을 주민과 함께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는 횃불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후 시위 참여자로서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1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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