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운
朴奉云1898. 10. 15 ~ 1973. 4.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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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8년 10월 15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위라리(位羅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봉은(朴鳳殷)을 사용하였다. 운곡면 횃불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운곡면에서는 1919년 4월 3일 청양군 최초의 만세운동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본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좌절되었다. 이후 운곡면에서의 만세운동은 4월 6일부터 8일까지 야간에 산 위에서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운동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출동하기까지 만세운동의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어두운 야간에 전개되어 참여자를 쉽게 식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위 참여자를 검거하기 어려웠다. 또한 횃불은 야간에 멀리서도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시위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키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19년 4월 6일 밤 운곡면소재지인 신대리(新垈里)를 중심으로 모곡리(茅谷里)·영양리(永陽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위라리 주민 600여 명과 함께 마을 주변의 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2일 뒤인 4월 8일 밤에는 오후 10시부터 운곡면과 비봉면(飛鳳面)의 주민과 연합하여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6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한 이 만세시위에도 적극 참여하여 마을 주민과 함께 주변 산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야간에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면 일본 헌병은 산 위로 직접 올라오지는 않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해산시켰다. 이후 일제는 각 마을에 헌병 등을 파견하여 횃불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1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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