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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술

朴鳳述

1892. 10. 13 ~ 195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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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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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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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10월 13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칠곡군 인동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인동면 진평동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7일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등사판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인동교회(仁同敎會) 목사인 이상백(李相栢)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이영식은 이상백에게 독립선언서를 보여주며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세운동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인동면 진평동에서도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다. 평소 국권 회복을 꿈꾸던 이상백은 임용섭林龍(燮)·이영래李(榮來)·박명언(朴明彦)·권영해(權永海)·임점석林(占錫) 등과 함께 인동면 진평동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3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한 후,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필사하는 등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3월 12일 이상백·이영식·이내성 등은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동네 곳곳에 붙이는 한편,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같은 날 오후 8시, 인동면 진평동의 뒷산 기슭에 300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 이상백과 이영식이 각자 민족자결의 취지를 설명하고, 조선 민족의 독립에 대해 연설을 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어 참가한 마을 주민들이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소리를 들은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참여한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주도자를 비롯한 참가자 일부를 붙잡았다. 그러나 한 번의 해산에도 불구하고 인동면 진평동의 만세운동 기운은 줄어들지 않았다. 3월 13일 오후 4시에 15~16명, 같은 날 오후 9시에 약 30명, 3월 14일 오전 10시에는 약 40명이 같은 장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영식과 같은 계성학교 학생인 김도길(金道吉)도 고향인 인동면 진평동에서 계속해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때 김도길,김성윤(金性允) 등과 함께 인동면 진평동에서 추가적인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14일 저녁, 김도길과 함께 마을의 집집마다 방문하여 각 호마다 한 사람씩 나와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권유하며 사람을 모았다. 이날 밤 9시, 약 200여 명을 이끌고 뒷산에 올라 다시금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하고 주도자를 붙잡았다. 이 때 대열의 선두에서 사람들을 이끌다가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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