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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치전

牟治田

1894. 12. 22 ~ 196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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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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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統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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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통영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6) 1894년 12월 22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서정(曙町)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약종상(藥種商)으로 부친의 약방을 돕고 있었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9일부터 진평헌(陳平軒)·권남선(權南善)·김형기(金炯綺)·양재원(梁在元)·배익조(裵益祚)·강세제(姜世濟)·이학이(李學伊)·허장완(許璋完) 등 17명과 함께 송정택(宋正宅)의 사랑방에 모여 통영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 거사일은 3월 14일로 정하였다. 3월 12일의 모임에서 주도자들은 선언서의 기초와 운동의 방법, 선언서의 배부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진평헌은 ‘동포에게 격(檄)하노라’라는 격문을 작성하였고, 주도자들 각각은 광부, 포목상인, 기독교인 등 대중을 동원하는 책임을 분담하였다. 3월 13일 오후 8시경 주도자들과 함께 격문을 등사하기 위해 통영면사무소 등사판을 가지고 10여 리쯤 떨어져 있는 산양면사무소(山陽面事務所)로 이동하였다. 산양면사무소의 등사판을 포함해서 2대의 등사판으로 격문 1,200여 매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3월 14일 새벽 1시 30분경, 격문의 등사를 끝내고 통영면사무소에 등사판을 되돌려 놓으러 갔다가 매복 중이던 경찰에게 붙잡혔다. 나머지 동지들도 오전 3시경 통영면으로 돌아오다 잡혔다. 경찰이 만세시위 계획을 눈치 챈 것은 나카무라상점(中村商店)의 일본인 주인이 신고를 하였기 때문이다. 인쇄를 주도한 인물들은 등사에 필요한 미농백지 2,000매를 나카무라상점에서 구매하였는데, 다량의 용지를 구매하는 것을 수상히 여긴 상점 주인이 경찰에 정보를 제공하여 발각되었다. 1919년 5월 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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