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맹학근

孟學根

1885. 8. 12 ~ 1971. 1. 2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맹학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창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85년 8월 12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창수면의 만세운동은 삼계동(三溪洞)과 오촌동(梧村洞) 주민 10여 명이 영해 장터의 만세시위에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3월 18일 이들은 본래 창수면 남동쪽에 위치한 영해면(寧海面)의 성내동(城內洞) 장터 만세시위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렀을 때 시간상 영해까지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하고 그 대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신기동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협의한 후 지역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그리고 합세한 사람들은 다시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창수동을 향하였다. 이튿날인 3월 19일 오후 4시경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수각(李壽珏)·권재형(權在亨)·이현우(李鉉祐)·이현설·이현석(李鉉奭), 박재복(朴載馥)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은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물리력을 행사하면서 만세를 불렀는데, 이에 가담하였다. 시위대는 주재소의 사무실·객사·주임순사 숙사의 벽과 천정을 파괴하였고, 건물 내 집기와 서류들도 파손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7시경에 이르러서야 해산하였다. 일본군 중 일부가 영해군에서 시위대 진압을 위해 파견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시위대가 해산한 뒤였다. 이후 군경의 체포 작전으로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상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