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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시정

孟始楨

1877. 10. 1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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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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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풍산(豊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풍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풍산면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77년 10월 18일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안산면(安山面) 하지경리(下地境里) 에서 태어났다. 풍산지역 천도교 중심 인물로, 천도교 풍산교구의 봉훈(奉訓)이었다. 1919년 3월 함경남도 풍산군 풍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풍산군 이인면(里仁面) 원포리(院浦里)에 있는 김병식(金炳軾)의 집에서 강희준(姜熙俊)으로부터 3월 1일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주도로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선언서 발표와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후 천도교 풍산교구의 중심 인물인 천남면(天南面) 동대리(東坮里)의 박인진(朴寅鎭)을 김병식의 집으로 불러 3월 14일 풍산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의논하였다. 3월 14일 하지경리 불암(佛岩)에서, 안산면(安山面) 노은리(老隱里) 방면에서 오는 이들을 인솔하여 이인면 신풍리(新豐里)에 있는 천도교 풍산교구로 갔다. 교구당에 모인 200여 명의 천도교인들은 김창선(金昌善)과 박인진(朴寅鎭)의 연설을 들은 후,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경찰이 교당 안으로 진입하여 교인들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경찰의 진압에 맞서 천도교인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헌병분견소 앞까지 행진하였다. 헌병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시위대는 헌병분견소 안으로 들어가 기물을 부수고 병기를 탈취하려 하였다. 이에 헌병들의 발포가 시작되었고, 2명의 사망자와 1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만세시위는 오후 4시경까지 전개되었다. 이날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혔다. 1919년 11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1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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