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勳相
勳相188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간도국민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성진군 성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 학상면(鶴上面) 왕덕동(王德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천도교 성진교구의 교구장(敎區長)을 역임하였다. 1919년 당시 37세로, 묘목점(苗木店)을 운영하고 있었다. 성진군의 만세시위는 함흥군의 사립영생학교(私立永生學校) 졸업생인 허용필(許容弼)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준비되었다. 성진면 욱정교회(旭町敎會) 목사인 강학린(姜鶴麟)은 강희원(康禧元)·김상필(金相弼)·김원배(金元培)·배민수(裵敏洙)·서재영(徐在英)·안성윤(安聖允)·이효근(李孝根) 등 성진지역의 기독교 중심 인물들과 제동병원(濟東病院)에 모여 만세시위를 도모하였다. 거사일을 3월 10일로 결정한 후, 3월 7일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rierson, 한국명 具禮善) 목사의 도움으로 독립선언서와 격문 30,000매를 인쇄하였다. 3월 10일 오전 10시 제동병원 앞 광장에는 욱정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5,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강학린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가담하였다. 오후 3시 반 경에는 사립보신학교(私立普信學校) 학생들과 기독교인 200여 명이 참여한 제2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무력으로 해산시키려는 경찰을 향해 투석전으로 맞섰다. 그 과정에서 경찰 5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 날 시위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6월 28일 이른바 소요와 보안법,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9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0년 6월 26일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가 군자금 모집과 회원 모집을 위해 파견한 황상봉(黃尙鳳)을 만났다. 이틀 후에는 조승화(趙承和)의 집에서 김도흠金(道欽) 등과 함께 모여, 조승화의 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사안과 군자금 모집 방안 등을 논의하였다. 1920년 7월 9일 이들의 활동을 탐지한 성진경찰서의 경찰에 의해 황상봉이 체포되었고, 7월 12 김도흠과 조승화 등과 함께 붙잡혔다. 그 해 8월 16일 함흥지방법원 성진지청에서 소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20년 10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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