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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수

董敏秀

1872. 2. 3 ~ 1919.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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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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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명천(明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명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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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명천군 하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72년 2월 3일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하가면(下加面) 지명동(池明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천(廣川)이다. 1919년 3월 명천군 하가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전 11시 하가면 화대동(花臺洞) 화대 장터에서 명천군의 만세시위가 처음 전개되었다. 이날 만세시위는 바로 인접한 지역인 길주군(吉州郡) 길성면(吉城面, 이후 길주읍)에서 전개된 3월 12일 시위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만세시위에는 5,000여 명이 참여하였는데, 이는 함경북도에서 전개된 만세시위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헌병들은 헌병분견소 앞으로 행진하는 시위대에게 발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였다. 이튿날인 3월 15일에는 다시 화대 장터에서 김성련(金成鍊)·김익련(金益鍊) 형제와 김상훈(金相勛)·최우용(崔禹鎔)·현용묵(玄龍默) 등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상가면(上加面) 조당동(潮塘洞)에 출발하여 화대 장터로 행진하였다. 화대 장터에는 1,0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대를 이뤄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아픈 몸을 이끌고 화대 장터로 가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하가면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면사무소에 도착한 시위대는 면장 동필한(董弼漢)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동필한은 시위대의 요구를 거절하였고 이에 격분한 시위대가 그를 구타하였다. 동필한이 화대 헌병분견소로 도망치자 시위대는 헌병분견소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한편, 분견소 안에 숨어있는 동필한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분견소의 헌병들과 길주헌병대(吉州憲兵隊)에서 파견된 제27연대 소속 기마 헌병 13명이 합세하여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이때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차녀인 동풍신(董豊信)이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화대 장터로 달려와 만세시위를 다시 이끌었다. 기마 헌병 파견을 요청한 것이 동필한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시위대는 다시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동필한의 집과 회계원의 집도 불태워 버렸다. 이 일로 동풍신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일제의 고문 끝에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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