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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在石

在石

1899. 7. 30 ~ 1957. 4. 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魯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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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밀양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99년 7월 30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면(密陽面) 내일동(內一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재석(李在石)·노재진(盧載珍)·(魯載珍) 등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온 윤세주(尹世冑)·윤치형(尹致衡)은 서울에서의 만세시위 상황을 전하면서 김병환(金餠煥)·이장수(李章守)·윤보은(尹輔殷)·김상이(金尙伊)·김소지(金小池) 등과 만나 만세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밀양 읍내 장날인 3월 1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밀양면사무소와 부북면사무소(府北面事務所)의 등사판을 몰래 가져다가 위북산(偉北山)에서 독립선언서를 밤새워가며 수천 매 등사하였다. 그리고 여성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태극기를 수백 매 만들어 숨겨두고, 인근 마을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였다. 거사 계획을 전해 듣고 이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고, 3월 13일 밀양공립보통학교 앞 밀양 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 속에 장꾼으로 위장하여 들어갔다. 오후 1시 30분경,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기를 군중 속에 펼쳐 세우고 윤세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동지들과 함께 숨겨온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었다. 큰 깃발을 세우고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하자 주민들과 같이 대오에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행진하였다. 이에 만세를 부르는 군중이 2,000~3,000여 명으로 늘어나 밀양 거리는 온통 시위 군중으로 뒤덮였다. 밀양의 일본 헌병과 경찰 병력이 착검한 총을 휘두르며 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인원 부족으로 막지 못하고, 부산의 헌병수비대 병력의 증파를 요구하여 가까스로 진압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부산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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