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禮達
達1900. 10. 1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관련 사건
- · 서울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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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4) 1900년 10월 12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외가면(外可面,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河岾面)) 망월리(望月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모를 따라 이주하여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계룡면(鷄龍面) 경천리(敬天里)에서 성장하였다. 1918년 서울의 이화학당(梨花學堂) 고등과(高等科)에 진학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예정된 독립선언식에 민족대표들이 나타나지 않자, 학생들이 주도하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독립 만세’를 연창하면서 서울 시내 곳곳을 행진하였다. 시위대 일부가 이화학당에 들어와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독립선언문」을 뿌렸다. 이것을 받아보고 공감하여 즉시 만세시위에 참여하려 했으나, 이화학당에서 외출을 허락하지 않아 신특실(申特實) 등과 함께 기숙사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호응하였다. 이후 보성법률상업학교의 강기덕(康基德),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金元壁), 경성의학전문학교의 한위건(韓偉健) 등 학생 대표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3월 5일 남대문역(현재의 서울역)에서 전개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당일 아침 같은 학교의 유점선(劉點善)·신특실·유관순(柳寬順)·서명학(徐明學)·김분옥(金粉玉) 등과 함께 남대문역 앞에 시작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5일 오전 9시경 강기덕·김원벽 등이 인력거에 올라 ‘조선독립’이라고 크게 쓴 깃발을 흔들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들의 지휘 하에 시위대와 함께 ‘독립 만세’를 연창하며 행진하였다. 남대문에서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만세시위를 주도한 강기덕·김원벽 등 지도부가 붙잡혔다. 시위대는 두 갈래로 나뉘어 1진은 남대문 시장에서 조선은행 앞을 지나 종로 보신각으로 향하였고, 2진은 남대문에서 덕수궁 대한문 앞 무교동을 지나 종로 보신각 앞에서 1진과 만나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서울의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진과 2진의 시위대와 보신각에서 결합하였을 때, 많은 인원으로 증강된 경찰들과 대치하게 되었다. 경찰은 즉시 해산을 명령하였고 무력 진압에 나서 75명이 종로경찰서로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신특실·최정숙(崔貞淑) 등과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풀려난 후 1922년 이화학당을 졸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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