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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穎泰

穎泰

1876. 4.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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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盧穎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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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갑산(甲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장평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76년 4월 12일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회린면(會麟面) 후지리(厚地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명은 노흠태(盧欽泰)이다. 1919년 3월 함경남도 갑산군 장평면(長平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갑산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 단천(端川)교구의 최봉천(崔鳳天)이 1919년 3월 9일 갑산교구를 방문하여, 3월 15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면서 준비되었다. 또한 최봉천은 그날 밤 회린면 화장리(化墻里)의 정완조(鄭完朝)를 방문하여,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최봉천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에 대한 준비는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한 이는 천도교 갑산교구 전교사(傳敎師)인 김명수金(明洙)였다. 김명수는 3월 11일 풍산군(豊山郡) 안산면(安山面) 하지경리(下地境里)의 천도교 교당으로부터 만세시위에 대한 서신을 받고, 12일 회린면 후지리로 가서 정국태(鄭國泰)와 정수웅(鄭秀雄)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갑산의 만세시위에 대해 논의한 결과, 3월 15일 갑산군 장평면 서부리(西部里)에 있는 갑산교구 교당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15일 오후 2시경 갑산교구 교당에는 200여 명의 천도교인들이 모였다. 이때 김명수·정수웅·김용균金龍(均)·박문옥(朴文玉)·정창원(鄭昌元)·조병학(趙秉學)·조석준(趙錫俊)·조영호(趙英浩)·주남호(朱南浩)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조병학이 태극기를 게양하였고, 모두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청으로 향한 시위대는 헌병들의 저지를 뚫고 안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시위 상황을 보고 받은 혜산진 수비대가 장교 이하 12명의 병력을 파견하고, 경찰과 합동으로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날 밤 주도자에 대한 검거가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공소하였으나, 그 해 6월 20일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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