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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泳淑

泳淑

1883. 4. 2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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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盧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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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咸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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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함흥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83년 4월 27일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함흥면(咸興) 하동리(荷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노영숙(盧永淑)이다. 1919년 3월 함흥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함흥의 만세시위는 1919년 2월 26일 평양의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교사인 강봉우(姜鳳羽)가 함흥의 신창리교회(新昌里敎會)에서 함흥지역의 목사와 장로들을 대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와 향후 독립에 대한 준비를 역설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원산의 광석동교회(廣石洞敎會) 장로인 이순영(李順榮)이 함흥면 중하리교회(中荷里敎會)에서 3월 1일 원산의 만세시위를 알리고 함께 궐기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연설을 들었다. 1919년 2월 28일 중하리교회에 모인 함흥지역 기독교 지도자들은 만세시위 준비를 위한 자금 조달과 준비 조직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만세시위는 3월 3일에 결행하기로 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함흥고등보통학교(咸興高等普通學校)·함흥농업학교(咸興農業學校)·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 3·4학년생으로 구성된 함산학우회(咸山學友會)도 3월 3일 새벽 4시 30분 서함흥역(西咸興驛) 앞에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3월 2일에는 다음 날 거행하기로 사전에 계획된 두 개의 만세시위와 무관하게 주민들이 산발적으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이 만세시위는 많은 군중들이 호응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헌병, 의용소방대,재향군인회의 도움을 받은 일제 경찰은 300여 명의 시위대를 붙잡았다. 3월 2일 만세시위에 놀란 경찰은 3월 3일 새벽부터 함흥 전역에서 대규모 예비검속을 실시하였다. 이 검속으로 인해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기독교 지도자들과 함산학우회 간부들이 모두 붙잡혔다. 예비검속으로 지도자들이 붙잡혔지만, 3월 3일 정오 하동리에서 학생들과 시민 1,000여 명이 참가하는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이 시위대 100여 명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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