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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천년

牟千年

186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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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모천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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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咸平)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함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전해산 의병부대
  • · 심남일 의병부대
  • · 모천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영풍면(永豊面) 항동(項洞) 출신으로, 자료에 따르면 186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산(全海山)과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에서 각각 중군장과 부장직을 맡았고, 이후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전해산은 전북 임실군(任實郡) 출신으로 1908년 7월 의병을 일으켜 1909년 2월까지 전남 영광군(靈光郡)·나주군(羅州郡)·광주군(光州郡) 등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쳤던 의병장이다. 전해산 의병부대에서는 중군장(中軍將)의 직책을 맡아 일본군과의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들어 일제의 압력이 거세지고, 3월 경 영광 지역의 교전에서 전해산 의병부대가 패배함에 따라 의병활동을 지속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결국 전해산은 순종의 해산령이 공포되자, 그 해 5월경에 부대의 지휘권을 호군장(護軍將) 박영근(朴永根)에게 넘기고 은신하였다. 이후 전해산 의병부대를 나와 의병활동을 이어가다가, 연합전선을 구축했던 심남일 의병부대에 합류해 부장(部將)의 직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09년 8월경부터는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는데, 이때 스스로를 ‘제2의 전해산’이라고 칭하였다. 당시 일제의 보고서에는 그의 의병부대가 300여 명에 이른다고 하나, 실제로는 70~80여 명 정도가 때때로 나타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처럼 끊임없이 항일 활동을 지속하던 중 1909년 10월 10일 임곡헌병파견소(任谷憲兵派遣所)의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910년 3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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