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돌
朴聖乭1895. 6. 17 ~ 1956. 7.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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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95년 6월 17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괴시리(槐市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박성돌(朴成乭)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시장(城內洞市場, 영해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영덕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성내동시장에서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4월 4일 남정면(南亭面) 만세시위에 이르기까지 약 15일간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성내동시장 만세운동은 기독교 신자 김세영(金世榮)이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하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고향 영덕으로 다시 내려와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시작되었다. 김세영은 기독교 신자 권태원(權泰原)과 함께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하여 각 학교 인사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거사의 날짜와 장소, 방법 등을 협의한 결과 3월 18일 영해면 성내동시장에 집결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권태원은 지역의 유림들에게도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거주지인 괴시리에도 거사 소식이 전달되면서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영덕지역 최대 장시가 열리는 성내동시장으로 갔다. 시장에는 지역의 기독교 세력과 유림 세력, 그리고 약 2,000여 명의 군중이 함께 모였다. 앞에서 전달된 작은 태극기를 받아들고 독립만세를 큰소리로 외쳤다. 이어서 군중들과 함께 시위 대열을 형성하여 행진하면서 만세를 외쳤다.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영해경찰관주재소 소속 일경들이 출동하였다. 일경들은 군중들에게 해산을 명령하고 태극기를 빼앗으며 강압적으로 시위대의 행진을 저지하였다. 하지만 시위대와 함께 이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영해공립보통학교(寧海公立普通學校)·영해공립심상소학교(寧海公立尋常小學校)·영해우편소(寧海郵便所)·영해면사무소(寧海面事務所) 등 읍내 각 지역을 행진하였다. 그러나 결국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로 재판을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4개월여의 고초를 겪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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