都福烈
都福188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문태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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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계북면(溪北面) 우동리(紆東里) 출신이다. 1910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23세로, 188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의병 활동 당시 직업은 석유상(石油商)이었다. 1908년부터 1909년까지 문태수(文泰洙)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전북 용담군(龍潭郡, 현 진안군 일대)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문태수는 경상남도 안의군(安義郡, 현 함양군) 출신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지리산에 들어가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무주(茂朱)에서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덕유산에서 일본군을 처단한 것을 시작으로, 1906년에는 팔공산에서, 1907년에는 무주에서 일본군을 습격하였다. 또한 1907년 12월 양주에서 각 도의 의병부대가 모일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합세하여 호남창의대장에 추대되어 서울진격작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문태수 의병부대에 참여한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늦어도 1908년 중순 무렵으로 추정되며 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1908년 (음)9월 6일 ‘총을 차출하라. 총의 차출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금전을 차출하라’는 내용의 서면을 문태수에게서 받은 뒤, 전북 용담군 이남면(二南面) 신연리(新硯里)에 사는 안창모(安昌謨)와 안봉렬(安奉烈)에게 서면을 보여주며 협조를 요청하여 각각 엽전 4냥씩을 모집하였다. 또 1909년 (음)4월 2일 박십장(朴什長)외 동료 의병 3명과 함께 전북 용담군 일남면(一南面) 갈거리(葛巨里)에 사는 윤주옥(尹珠玉)으로부터 엽전 150냥을 징수하였다. 이처럼 활발히 군자금을 모집하다 붙잡혀, 1910년 1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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