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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熙泰

熙泰

186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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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盧熙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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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노희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출신지와 생몰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일제측 자료에 의하면 1867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에 따라 한자가 다른 노희태(盧希泰)로 기록된 경우도 있다.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계기로 일제가 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서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 당하자 서울과 원주(原州)의 시위대(侍衛隊)와 진위대(鎭衛隊) 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丁未義兵)’이라 불리는 항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무기 사용과 전술 구사에 능숙한 해산 군인들은 의병장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대한제국 육군 출신으로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현 금야군(金野郡)) 일대에서 수백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항일 의병 투쟁을 벌였다. 일본군의 내부 보고서에는 육군 조장(曹長) 출신으로 부하들을 노련하게 지휘하고 민간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 적었다고 평가되어 있다. 한편, 대한제국 군제(軍制)에는 조장이 없기 때문에 일본군의 조장에 상응하는 특무정교(特務正校, 원사) 또는 정교(正校, 상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함남 장진군(長津郡)과 평남 덕천군(德川郡) 사이의 경계 지역으로 상대적으로 행정력이 약하게 미쳤던 평북 강계군(江界郡) 용림면(龍林面)을 근거지로 함남과 평남 일대에서 유격전을 펼쳐 많은 전공을 올렸다. 이후 일본군과의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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