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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원

都大元

1861 ~ 192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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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도대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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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江界)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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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족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고산면(高山面) 남상리(南上里) 출신이다. 1920년 서간도에서 활동하던 당시 사망기록에 따르면 59세로 186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서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시점은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한족회 청년단에서 활동하다가 1920년 일본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서간도지역을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와 함께 경술국치 직후부터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착수한 곳으로, 일제강점기 서간도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펑톈성(奉天省) 퉁화현(通化縣)의 금두화락(金斗伙洛)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청년단 조직에 참여하였다. 퉁화현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서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된 주민 자체단체인 한족회(韓族會)에 가담하여 청년단을 조직하였다. 한족회는 군사 정부인 군정부(軍政府)와 더불어 독립전쟁의 인적·물적 자원 제공과 한인들의 자치 신장을 위한 활동을 위해 조직된 단체였다. 부민단의 주민제도를 근간으로 하여 운영하면서 배달학교(倍達學校)를 설립하고 기관지 『한족신보(韓族新報)』 간행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또한 군자금 모집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1920년에 들어서면서 서간도 일대에서 많은 독립운동 세력과 한인들이 일제 군경에 의해 체포되거나 살해되었다. 이른바 경신참변[(庚申慘變), 간도참변(間島慘變)]이 자행되는 가운데 11월 3일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한족회 정봉신(鄭鳳信)·이용성(李龍成) 등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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