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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漢石

漢石

미상 ~ 19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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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魯漢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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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출신지는 알 수 없다. 『독립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만주에서 활동하던 1921년 당시 23세로 1898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지역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1년 간도참변 당시 일본군에 붙잡혀 희생되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지역에서도 항일운동 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0년 6월 봉오동(鳳梧洞) 전투에서 독립군이 크게 승리하자, 일본군은 1920년 8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域不逞鮮人剿討計劃)’을 작성하였고, 일본 내각은 1920년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일본군은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 및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은 북간도 지역에 대한 이른바 ‘토벌’을 시작하였다.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감행된 제1기 ‘토벌’ 때,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인을 대량으로 학살하였다.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의해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대첩(靑山里大捷)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1921년 3월 4일 창바이현(長白縣) 천평(泉坪)에서 일본군이 민가 5호를 불 지르며 독립운동을 이유로 한인을 사살할 때 김우정(金禹貞)·박홍수(朴弘洙)·김치삼(金致三) 등 4명과 함께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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